벌거벗은 세계사 프랑스 천재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뮤즈 카미유 클로델 화가 생애 나이 재봉사 로즈 뵈레사실혼 프로필 올리비아 아드리아나 우정아 교수 출연진 재방송 101회
벌거벗은 세계사
프랑스 천재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뮤즈 카미유 클로델 화가 생애 나이
재봉사 로즈 뵈레 사실혼 프로필
올리비아 아드리아나
우정아 교수 출연진 재방송 101회
로댕과의 만남
1883년 부셰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기 전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이자 친구였던 오귀스트 로댕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위탁했다. 부세는 로댕에게 특히 카미유의 지도를 부탁했는데 이때 비로소 로댕과 카미유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카미유의 나이는 19세, 로댕의 나이는 43세였다. 이미 20년간 동거하고 자신의 아들을 낳은 여자로즈 뵈레가 있었던 로댕은 당시 19살이었던 카미유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때 로댕의 도움없이 루이즈를모델로 '16세의 내 동생'을 완성했는데 로댕은 극찬했다. 훗날 카미유는 폴을 모델로 '37세의 폴 클로델'과'42세의 폴 클로델 흉상' 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 카미유를 짝사랑하던 모델 지강티를 조각한 '지강티의 흉상'을 1885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의 생명력은 말할 것도 없이 마치 살아있는 듯해 로댕은 카미유의 재능에다시 놀라게 된다. 1885년 카미유는 가족과 상의 없이 로댕의 권유로 로댕의 작업실에서 제자 겸 모델로 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댕과 카미유는 늘 함께 있으면서 애정을 키워나갔다. 24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둘의사랑은 더욱 커져갔다. 로댕은 언제나 자신이 참석하는 모든 사교계에 카미유를 동반하고 다니며 카미유가대단한 조각가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미유가 작업실에 나오기 시작하자 여자 모델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왜 같은 여자 앞에서 옷을 벗으라는 것이냐는 둥 빈정거리기 일쑤였으며 작업실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다. 1887년 카미유는 로댕의 작업실에서 정식으로 로댕의 조수로 일하면서 로댕의 작품인 <칼레의시민>, <지옥의 문>, <입맞춤> 등의 제작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둘은 사랑을 위해 광란의 뇌부르그로 불리는 집과 투렌느 이즐레트 성을 빌렸고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이 때 로댕은 카미유를 '공주님'이라 칭하며 거리낌없이 사랑을 표출했다. 이 시기에 카미유는 '뇌부르그의 광란', '이교도의 농지', '사쿤탈라' 등의 작품을 조각했고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로댕과의 불화
1888년 카미유는 살롱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정식 인정을 받게 됨과 동시에 세인들의 질시의대상이 되었다. 이후부터 카미유의 작업 스타일이 보다 독창적이고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1889년 이후부터카미유의 작가로서의 활약이 서서히 커지자 로댕은 까미유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카미유와 로댕 사이에는스승과 제자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카미유는 1891년까지 로댕과 함께 했으나, 이후에는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그러나 로댕이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맨션을 구입하는 등 그녀의 의견을 무시하자 분노하여 이를 작업에 표현했고 그제서야 로댕은 그녀를 피하고 프랑스 뫼동에 정착했다. 1892년 카미유는 로댕과 헤어지며 로댕의작업실을 나왔다. 카미유는 실질적인 작품 제작은 제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끊임없이 사교 모임을 하던 로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댕과의 결별은 카미유가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필요한 조력자를 한번에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로댕은 카미유가 자신의 작업실을 떠나자 유감의 뜻을 밝혔다.
독립
로댕과 헤어진 카미유는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와 친분을 가지며 새로운 연인 관계로 발전할 여지가 보였지만 결국 카미유의 거부로 금방 헤어졌다. 다만 카미유의 작품 중 '왈츠'의 모델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드뷔시에게 선물로 주었고 드뷔시는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1893년 <성숙>을 살롱에 출품해서 극찬을 받았다. 1894년 로댕의 부탁으로 벨기에 예술가협회의 전시회에 초대되어 작품 전시를 했는데 이때까지도 로댕과는 계속적인 서신 교환은 있었다.
살롱에 <로댕의 흉상>을 출품하여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로댕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1899년 살롱에자신의 역작인 대리석 작품을 출품하였으나, 전시회 중 작품을 도난당했다. 작품을 훔친 범인이 로댕이라고생각했던 까미유는 로댕을 비난함과 동시에 영원히 로댕과 멀어졌다. 카미유는 아예 부르봉가 19번지로 거처를 옮겼고 이 후 14년간 혼자 기거했다.
오귀스트 로댕 프로필 나이 국적
Auguste Rodin
▶ 본명 : 프랑수아 오귀스트 르네 로댕 François Auguste René Rodin
▶ 출생 : 1840년 11월 12일 프랑스 파리
▶ 사망 : 1917년 11월 17일 (향년 77세) 프랑스 뫼동
▶ 국적 : 프랑스
▶ 직업 : 조각가, 화가
▶ 수상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카미유 클로델 프로필 나이 국적
▶ 본명 : 카미유 로잘리 클로델 Camille Rosalie Claudel
▶ 출생 : 1864년 12월 8일 프랑스 제2제국 엔, 페레앙타르드누아
▶ 사망 : 1943년 10월 19일 (향년 78세) 비시 프랑스 보클뤼즈 주 몽데베르그
▶ 국적 : 프랑스
▶ 직업 : 조각가
5월 30일 화요일 벌거벗은 세계사 101회 에서는 천재 조각가 로댕과 그의 연인 클로델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통해 로댕의 진짜 모습을 파헤쳐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를 위해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우정아 교수가 강연자로 나섭니다.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우 교수는 현대 미술에 대한 다양한 인사이트를 제시하고 있는 미술사학자입니다.
이날 첫 강의에서는 ‘신의 손’ 로댕의 화려한 업적과 더불어 불륜 스캔들을 소개할 예정으로 호기심을 높입니다. 우 교수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거장이자 서양 미술사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로댕에게 치명적인 꼬리표가 하나 있었다고 말합니다. 로댕이 사실혼 관계인 아내를 두고 24세 연하인 제자 클로델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 두 사람은 파리 미술계에서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고 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로댕과 클로델이 함께 하는 동안 불멸의 작품들이 탄생했으며, 이별 뒤에도 로댕은 여전히 저명한 조각가로 승승장구했다고 합니다. 반면 클로델은 천부적인 재능과 달리 비참한 운명을 맞는다고 설명, MC와 게스트들의 안타까움을 유발했다는 전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 교수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받고 있는 로댕의 유명한 작품들 속 비하인드스토리도 들려주며 흥미진진함을 더합니다. 한편, 오늘의 여행 메이트로는 프랑스 출신의 올리비아와 이탈리아에서 온 아드리아나가 동행합니다. 올리비아는 “로댕은 프랑스의 자부심”이라면서 로댕의 작품에 대한당대 비평가들의 글을 소개해 유익함을 선사합니다.
아드리아나 역시 예술 전공자답게 로댕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이야기의 깊이를 배가시킬 전망입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101회는 5월 30일 밤 10시 10분 tvN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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