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 CEO 리사 수 프로필 재산 남편 수집 빛 가족 국적 학력 남편 다니엘 린 연봉 나이 리더십
리사 수는 대만계 미국 기업인이며, 현재 AMD의 CEO 겸 엔지니어입니다. 짐 켈러와 함께 폐업 벼랑 끝까지 갔었던 AMD를 다시 부활시킨 장본인이면서 인텔의 독점 아래 있던 컴퓨터 시장에 다시 한번 경쟁의 활기를 가져온 구세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AMD 입사 이전까지의 행보는?
리사 수는 1969년 대만의 타이난에서 태어났으며, 3살 되던 해에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됩니다. 통계학자이자 회계사인 부모님은 그녀가 피아노 전공을 하길 원했지만, 그녀는 엔지니어링 분야에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재능이 높았는데요.
1986년 MIT에 입학해서 전기공학에 대해서 전공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동일 대학교에서 웨이퍼 생산과 관련된 분야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박사 학위 취득을 한 후에는 학계에서 연구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직접 현업에 들어가서 반도체를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박사후 과정을 하지 않고 바로 업계로 진출을 하게 되는데요.
1994년에 TI에 입사를 하게 된 후, 그다음 해인 1995년에는 IBM 반도체의 연구개발 부서에 이사로 이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 IBM 연구개발 부서에 2007년까지 머물면서 40편 이상의 반도체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현재 업계에서 표준이 되고 있는 많은 기술들을 만들게 됩니다.
또한 재직을 하면서 도시바, 소니와 함께 공동으로 게임용 차세대 프로세서 개발을 지휘하였으며 리사 수 연구팀에서의 성과는 CELL-Broadband Engine의 개발에 이용이 되었으며, 차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플레이스테이션 3에도 사용이 됩니다.
2000년에는 최고 경영자 기술 자문 직책도 맡으면서, 2001년에는 MIT Technology Review를 통해서 <35세 미만 최우수 혁신가>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2006년에는 반도체 연구개발 센터의 부사장으로 승진을 합니다. 그리고 2007년 프리스케일에 CTO 위치로 이직을 하고 연구 지휘 업무 맡았으며, 2009년에는 공학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마케팅 능력과 대외 전략도 높게 평가를 받으면서 프리스케일의 총책임자겸 부사장으로 승진을 하였습니다. 또한 2011년에 있었던 기업 IPO 과정에서 크게 역할을 하게 됩니다.
▲AMD 사장 취임 이후의 행보는?
프리스케일이 IPO를 마친 그다음 해인 2012년에, 리사 수는 이전 근무지인 IBM의 멘토였던 니콜라스 도노프리오(Nicholas Donofrio)에게서(IBM 호환 PC 및 메인 프레임의 기초 설계를 담당했던 전설적인 엔지니어이면서, IBM 퇴직 이후에는 AMD 이사회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었음) 한 가지 제안을 듣게 되는데요. 그 제안은 바로 AMD로 와서 함께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IBM 때부터 보아온 그녀의 높은 도전정신과 경영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지금 기업이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 AMD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구원투수로 리사 수를 생각하면서 AMD의 경영진 자리를 제안한 것입니다. 결국 리사 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AMD의 부사장(글로벌 비즈니스 매니저)으로 함께 하게 됩니다.
지난 2012년에 AMD에 들어왔던 그 당시에는 AMD가 지금 당장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출시하였던 불도저 마이크로 아키텍처가 실패하는 바람에 AMD의 주가는 20달러에서 1~2달러 수준으로 폭락을 하였고, 무디스 등을 비롯한 시장 평가 기관으로부터 CAA1(투자부적격) 등급으로 지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즉,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회사의 주식은 매수해서는 안 되는 업체라는 이미지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더군다나 인텔의 CEO였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이때의 AMD를 두고 <이제 두 번 다시는 재기에 나서지 못하게 된 회사이니, 앞으로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우리는 새로운 경쟁자인 퀄컴에 집중을 하자>라고 하는 내부 업무지침을 직원들에게 전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AMD의 핵심 인력들 역시도 다른 경쟁사로 계속해서 이직을 하면서 AMD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리사 수는 총괄 부사장으로 이직함
리사 수는 취임 직후에 바로 적자에 빠져있던 회사를 구하기 위해서 2년 동안 사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면서 여러 승부수를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일은 라데온 RX 200 GPU 가격을 낮추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라데온 RX 200 GPU 시리즈의 가성비가 올라가면서 가상화폐의 채굴 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판매가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을 합니다.
그 이후에는 과거에 도시와 및 소니와 공동으로 만들었던 플레이스테이션 3 전용의 CELL 엔진 CPU를 만들었던 기억을 되살려서 콘솔 게임기 시장에도 진출을 하게 됩니다.
과거에 AMD에서 개발했던 APU(CPU와 GPU를 통합)를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게이밍 사업부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게이밍 사업부에 접촉하여 콘솔 게임기에 맞춰서 설계를 할 테니 채택이 되도록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통합형 칩셋으로 인해서 게임기 자체를 작게 만드는 데는 반도체로서 적합하다고 양사에서 판단을 하면서 채택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 엑스박스 원의 콘솔 게임기와 8세대 게임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 4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빠른 속도로 팔려나갔으며, 이것은 AMD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쳐서, 2013년 10월 AMD 3분기 실적 보고서에서는 수익 다각화 구조를 통해서 40% 이상의 매출 실적을 콘솔게임 부문에서 올릴 만큼 7년 동안 보였던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2014년 10월 8일 AMD 이사회에서는 전임 로리 리드 CEO를 대신해서 글로벌 비즈니스 부문 총괄 부사장이었던 리사 수를 AMD의 CEO로 임명하였습니다.
AMD를 흑자 전환을 시키는데 성공한 리사 수는 회사 사정이 안 좋다고 해도 한 가지만은 반드시 집중 및 실천을 임직원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GPU와 여타 R&D 개발사업은 과감하게 정리 및 보류를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경쟁사에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테니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라고 할 정도로 곧 망할 회사였던 반도체 회사를 경영과 개발 모두에서 혁신을 하면서 길었던 암흑기를 걷어내고 인텔에 대항할 수 있게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리사 수 프로필
▲이름 : 리사 쯔펑 수 (Lisa Tzwu-Fang Su) 쑤쯔펑 (蘇姿豐)
▲출생 : 1969년 11월 7일 (51세), 대만 국기 중화민국 타이난시
▲국적 : 미국
▲신체 : 168cm
▲직업 : 엔지니어, 기업인, 현직 AMD 제5대 사장 겸 CEO (2014 ~ 현재)
▲배우자 : 남편 다니엘 린
▲학력 : 브롱스과학고등학교 졸업 (~1986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1986~1990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전기공학 석사 (1991~1991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전기공학 박사 (1991~1994년)
▲별명 : 빛사 수, 갓사 수, 미소녀 아이돌, 수리사, 수리수리 MA수리, 라라[3] (테크)랜드 사장, 프랑스 남편 수집가
▲리사 수 연봉 : 5,850만달러(약 724억 원)
▲리사 수 본인의 전체 재산은 본인도 정확히 모른다고 함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김구라 프로필 나이 라디오스타 삿대질 논란, 재혼 1년 만에 자녀 출산 12살 연하 아내 그리 동생 생겼네
개그맨 윤정섭 프로필 욕설 녹취록 전화 고졸 학력 하헌기 민주당 국적 이스라엘 고향 나이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조상우 역 NO.218 배우 박해수 필모그래피 프로필 고향 학력 나이 결혼 아내 작품활동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