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중국 당나라 양귀비 34살 차이 신분 상승 생애 나이 현종 후궁 며느리 시아버지 이모 수왕 불륜 막장 출연진 이성원 교수 프로필 마국진 인스타 83회
1월 24일 방송되는 83회에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녀로 꼽히는 양귀비의 금단의 사랑에 대한 진실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중국의 전통 역사를 당대 문학에 견주어가면서 알기 쉽게 풀어내 주는 전남대학교 사학과 이성원 교수가 강의에 나섭니다. 25여 년간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하고 연구하며 관련 서적 또한 다수 집필한바 있는 이 교수가 흥미로운 주제의 오늘 강연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가 모아집니다. 이 교수는 양귀비가 중국의 수많은 문학,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될 정도로 미모, 예술적 재능, 지략을 두루 갖춘 절세미녀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하급관리의 수양딸에서 당 제국 황제의 며느리로 신분 상승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시아버지였던 현종의 눈에 들며, 34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세기의 불륜으로 이어지는데요. 마침내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후궁의 자리까지 차지하여 출연진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이뤄낸 금단의 사랑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황제의 여자가 되어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양귀비와 일가친척들의 부정부패는 물론, 양귀비에 빠져 정세를 돌보지 않는 황제로 인해 점차 백성들의 삶은 비참해졌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이들의 기행에 출연진 모두가 “막장이네. 막장”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규현은 “모르겠어요. 이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네”라며 퀴즈까지 거부했다는 전언입니다.
한편, 이번 주 히스토리 에어라인의 여행 메이트로는 중국에서 온 마국진과 소월이 여행 메이트로 함께 합니다. 특히 소월은 “최근 중국에서는 양귀비를 중국 역사상 후궁 중에 예술적 재능이 가장 뛰어난 무용가, 음악가로 재조명하고 있다”고 전하며 당시 양귀비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고 한층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 전망입니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 10분 tvN에서 시청 하실 수 있습니다.
당 제6대 황제
현종 명황제
玄宗 明皇帝
▶ 출생 : 685년 9월 8일 당 동도 낙양(現 허난성 뤄양시)
▶ 즉위 : 712년 9월 8일 당 장안 황궁(現 산시성 시안시)
▶ 사망 : 762년 5월 3일 (향년 76세) 당 낙양 흥경궁(現 허난성 뤄양시)
▶ 능묘 : 태릉(泰陵)
▶ 재위기간 : 당의 황태자 710년 7월 28일 ~ 712년 9월 8일
제6대 황제 제18대 가한 712년 9월 8일 ~ 756년 8월 12일
당의 태상황 756년 8월 12일 ~ 762년 5월 3일
▶ 본관 : 농서 이씨
▶ 휘 : 융기(隆基)
▶ 부모 : 부황 예종
모후 소성황후
▶ 형제자매 : 6남 11녀 중 3남
▶ 배우자 : 정실 폐후 왕씨, 정순황후, 원헌황후
후궁 매비 강씨, 귀비 양씨
▶ 자녀 : 24남 30녀
▶ 아명 : 이삼랑(李三郎)
▶ 작호 : 초왕(楚王) → 임치군왕(臨淄郡王)→ 평왕(平王)
▶ 묘호 : 현종(玄宗)
▶ 존호 : 개원천지대보성문신무증도효덕황제 (開元天地大寶聖文神武證道孝德皇帝)
▶ 시호 :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
▶ 한호 : 천가한(天可汗)
▶ 연호 : 선천(先天, 712년 ~ 713년)
개원(開元, 713년 ~ 741년)
천보(天寶, 742년 ~ 756년)
양귀비
당현종의 후궁
▶ 貴妃 楊氏 귀비 양씨
▶ 성씨 : 양(楊)
▶ 아명 : 옥환(玉環)
▶ 출생 : 719년
▶ 사망 : 756년 (향년 37세)
▶ 신체 : 165cm, 60~65kg[2]
▶ 종교 : 불교 → 도교
▶ 부군 : 수왕 이모, 당현종 이융기
▶ 가족 관계 : 부친 양현염(楊玄琰), 언니 한국부인 양옥패, 괵국부인 양옥쟁, 진국부인 양옥차, 6촌 오빠 양국충, 양아들 안녹산
양귀비는 8세기 초중엽 사람으로 당나라 현종의 며느리 출신 후궁이었다. 양귀비는 이름이 아니라 양(楊)씨 성에 귀비(貴妃)라는 직함이 붙은 호칭이다. 본명은 전하지 않으나 도사가 되었던 시절 '태진'(太眞)이라는 도호(道號)를 사용했기에 사서에서는 본명 대신 양태진(楊太眞)으로 칭했고, 옛 중국의 사대부들도 흔히 '양태진'이라 불렀다. 아명은 일부 사료에 따르면 옥환(玉環) 또는 옥노(玉奴)였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의 대중들은 양귀비를 흔히 양옥환이라고도 불렀다.
양귀비의 눈동자가 푸른색이었고, 그래서 안녹산과 같은 색목인이었다는 설은 후대 사람들의 상상과 추측에서 비롯되었을 뿐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가 없다. 사서에서 양귀비는 그저 한족으로 나온다. 돌궐(쾩튀르크)과의 전쟁에서 힐리가한이 포로로 잡혀 죽은 후, 50년 동안 평화가 찾아왔지만, 가한만 사망했을 뿐 돌궐족 자체는 동화되지 않고, 그 정체성은 살아남았다. 50년이 지난 후 돌궐 제2제국이 등장하면서 서역이 돌궐의 지배하에 들어갔기에 색목인들이 당나라에 이주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양귀비의 생애
양태진의 본관은 포주(蒲州) 영락(永樂)으로 개원(開元) 7년(719) 용주(容州)에서 출생했다. 중국에서 전하는 속설에 따르면 옥으로 된 고리{옥환(玉環)}를 손에 쥐고 태어났기에 부모가 아명을 '옥환'(玉環)으로 지었다고 하며, 은둔해 살던 선비가 어린 태진을 보고서
"이 아이가 성장하면 황후와도 같은 자리에 오르리라."
하고 예언했다는 말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숙부의 집에서 살다가 개원 23년(735, 17세) 현종의 제18황자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가 되었다.
개원 25년(737, 19세)에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현종은 마음에 드는 여인을 찾아다녔으나 통 만나지 못했는데 며느리인 수왕비가 아름답더라고 진언하는 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개원 28년(740, 22세), 황제가 온천궁(溫泉宮)에 행행(行幸)했을 때 수왕비 양씨를 만나보고는 총애하게 되었다. 양씨는 남편인 수왕 이모의 왕부를 나와서 일시적으로 도관(道觀: 도교사원)에 들어가 출가했고, '태진'(太眞)이란 도호를 받아 여도사(女道士)가 되었다. 이것은 시아버지인 현종이 자기 아들의 비, 즉 며느리를 빼앗는다는 세간의 눈총을 피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황제와 내연의 관계였다. 이때 현종의 나이는 56세였으니, 양태진과 나이 차이가 33살에 달했다. 게다가 당시 중국의 평균 수명을 따져보면 할아버지가 묘령의 아가씨와 정분이 난 꼴이었다.
천보(天寶) 4재[10](745, 27세) 때 현종이 정식으로 양태진을 귀비(貴妃)로 책립했다. 양태진의 전 남편 수왕 이모의 생모가 다름아닌 무혜비였다. 양태진 입장에서는 (황제의 총비였던) 시어머니가 죽은 뒤 며느리였던 자신이 시아버지와 맺어져 예전 시어머니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이었다.
비록 황후는 아니었지만, 오랜 국정에 싫증난 노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궁중에서는 황후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을뿐더러, 심지어 천보 7재(748, 30세)에는 다른 세 자매까지 한국(韓國)·괵국(虢國)·진국부인(秦國夫人)에 봉해졌다. 양귀비는 물론 자매와 친족에게까지 현종이 후대했으므로 훗날 백거이는 이런 상황을 <장한가>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後宮佳麗三千人 후궁에 빼어난 미녀 3천이 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3천의 총애가 한 사람에 머무르고
(중략)
姉妹弟兄皆列土 자매와 형제 모두가 봉토를 갖게 되니,
可憐光彩生門戶 아리따운 광채가 가문에 나는구나.
遂令天下父母心 비로소 천하의 부모들이
不重生男重生女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겼네.
양귀비 자매가 누린 부귀영화로 인해 친척 오빠인 양국충(楊國忠) 이하 많은 친척이 고관대작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농서 이씨 황족과 통혼했다. 양귀비가 남방(南方) 특산의 여지(荔枝)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그 뜻에 영합하려는 지방관이 급마(急馬)로 신선한 과일을 진상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당시 양귀비의 옷을 만드는 전문 인력만 700명이 넘었다고 하니 나라가 기울지 않을 리가 없었다.
천보 14재(755, 37세)에 양국충과의 반목이 원인이 되어 동북 변방의 번장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천보 15재(756, 38세)에는 안녹산의 군대가 수도 장안(長安) 가까이까지 치고 들어왔고, 이에 현종은 귀비 등과 더불어 사천으로 도주했는데, 장안의 서쪽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진현례(陳玄禮)와 호위 병사들의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간신 양국충과 양귀비를 죽이지 않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다고 주장하며 멈추어 버렸다(마외병변). 당현종이 아무리 명령해도 말을 듣지 않으므로 하릴없이 양국충을 처단했으나, 양귀비에겐 죄가 없다고 하며 막으려 했다. 하지만 워낙 병사들의 기세가 드세어 양국충이 죽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달랠 수가 없었기에 결국 양귀비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
마국진 프로필 나이 키 학력
Ma Guo Zhen
▶ 대학강사
▶ 출생 : 1993년 7월 30일 중국
▶ 신체 : 183cm
▶ 소속 :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강사)
▶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통번역학 박사과정
▶ 수상 : 2019년 제12회 중국 전국통역대회 최우수상
▶ 경력 : 2021.03~ 한국통번역사협회 이사
▶ 마국진 인스타 : https://instagram.com/massam730?igshid=YmMyMTA2M2Y=
이성원 교수 프로필 학력 연락처
▶ 학력 : 서울대학교 연구실 인문대 2호관 323호
▶ 전남대학교 교수
▶ 교수전공 및 연구분야 : 중국 고대사
▶ 연락처 : 062-530-3257
▶ 이메일 : luxlee68@j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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