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3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정리 범인 누구 피해자 박영철 상병 차량 절도범 중고차매장 조영국 프로필 나이 직업 꼬꼬무 시즌3 63회
1월 26일 밤 방송에서 범인의 놀라운 정체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강화도 해병 총기 탈취 사건'을 조명합니다.
2007년 10월, 경기도 이천의 중고차 매장에서 기이한 절도 사건이 발생합니다. 매장에 찾아온 30대 남자는 그랜저를 타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지프차를 구하고 있다며 하얀색 코란도 한 대를 지목하고, 직원과 함께 시승을 시작하는데 그런데 그 순간. 직원이 잠시 차에서 내린 사이, 남자는 코란도를 몰고 그대로 도주해버렸습니다.
“이봐요! 손님 멈춰요 멈춰!”
난데없는 차량 절도범에 놀란 중고차매장 직원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데요, 알고보니 남자가 두고 간 그랜저 역시 이틀 전 도난신고 된 차량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왜 이틀 간격으로 차량을 두 대나 훔친걸까요?
절도범의 진짜 목표물이 드러난 건 그로부터 두 달 뒤였습니다.
“코란도를 탄 괴한이 군부대 초병을 치고 총기와 실탄을 빼앗아 달아났습니다.”
두달 전 코란도를 훔쳐간 남자는 12월 6일 저녁 인천 강화도에 나타납니다. 근무 중이었던 해병대원 두 명을 차량으로 들이받은 남자는 즉시, 대원들의 총기를 빼앗아 달아났습니다. 탈취된 무기는 K2 소총 1정과 실탄 수십 발. 군경엔 비상이 걸렸습니다.
“강화도 밖으로 나가는 길 전부 봉쇄해!”
강화도를 빠져나가는 모든 길목에서 검문검색이 시작됐지만 남자는 이미 인천을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대체 남자는 어딨는 걸까요. 그런데 몇 시간 후, 경기도 화성에서 문제의 코란도가 전소된 채 발견됩니다. 자신의 흔적을 모두 불태운 범인. 총기와 함께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사건 다음 날, 이명박 후보의 한나라당 당사로 전화 한통이 걸려옵니다.
-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
“자신이 총기강탈범이라며 저희 후보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13일 앞둔 시점. 범인의 최종 목표물은 대체 무엇일까요. 대대적인 검문과 수색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총기탈취범은 일주일 후 의외의 곳에서 자신의 흔적을 드러냅니다. 2007년 12월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강화도 총기탈취범과의 숨막히는 일주일.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가 꼬꼬무에서 처음으로 공개됩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전설의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준우승으로 얼굴을 알리며 현재는 그룹 내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앨리스 소희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진지한 태도로 연신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 소희. 최고의 몰입력을 보인 소희의 리액션 또한 이날 방송의 감상포인트입니다. ‘쌍 천만’ 배우! 강렬한 인상이지만 속은 순둥순둥한 배우 최귀화가 이번에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등장했습니다. 스크린 안과는 딴판인 수줍은 모습으로 수줍게 등장한 그는, 이야기가 시작되자 형사반장 같은 날카로운 추리력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는 듯 표정이 굳어지던 귀화, 참지 못하고 주먹을 들게 만든 결정적인 이야기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당대 최고 인기 드라마로 데뷔해 인기가요 MC로 레전드 영상을 남긴 이훈이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찾아왔습니다. 성규와의 찐 친분으로 진한 포옹을 나눈 이훈은 ‘꼬물이’라며 뜨거운 팬심까지 고백했습니다. 리즈 시절과 흑역사 언급에 당황스러운 신고식을 치른 그는, 이야기가 시작되자 필기까지 해가며 열정 가득한 추측을 쏟아냈는데 꽤나 높은 적중률에 연륜있는 리액션을 보여주었습니다. 입대를 앞둔 아들 생각에, 걱정과 분노의 열변을 토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 잊지 말아야 할 그 날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들려주는 63회 '사라진 K2 - 2007 해병대 총기탈취범과의 일주일'편은 1월 26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됩니다.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
전방지역인 강화도에서 경계근무를 마치고 귀대하던 해병대 대원 2명이 돌진한 차량에 치인 뒤 칼을 든 남성에게 공격당해 두 명의 해병들 중 한 명은 사망,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고 K2 소총 1정과 실탄 75발, 수류탄 1발, 유탄 6발을 탈취당한 사건이다. 범인은 사건 발생 6일 만에 체포되었다.
사건 발생 정리
2007년 12월 6일 오후 5시 40분, 해병대 제2사단 소속으로 강화도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피해자 이모 상병과 박모 일병은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수제선 수색 정찰작전 수행 중이었다. 그런데 쌍용 뉴 코란도 한대가 갑자기 두 사람을 고의로 덮쳤다. 범인은 차에서 내려 박 일병에게 다가가 "괜찮느냐?"고 묻는가 싶더니, 괜찮다고 대답한 박 일병에게 칼로 얼굴 등을 그었다. 박 일병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수류탄과 유탄이 들어있는 탄통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범인에게 칼로 여섯차례나 찔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한편 상대적으로 부상이 경미했던 이 상병은 개머리판으로 범인의 머리를 가격하는 등 저항했으나, 범인은 허벅지 등을 찌르며 10미터 정도 끌고 가서 K2 소총을 빼앗았다. 소총, 실탄, 그리고 수류탄과 유탄이 들어있는 탄통 등 무기를 모조리 털어간 범인은 강화도 북쪽 방향으로 도주했다.
수배 발령
사건 발생 후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오후 6시 30분경, 강화·김포·일산 일대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다. 범행 발생 시 마침 근처에 있던 목격자 2명과 생존 해병의 증언에 의해 범인의 인상착의가 30대 중반 남자, 키 170cm 정도, 베이지색 잠바, 머리에 상처가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고, 범인이 떨어뜨리고 간 모자, 안경, 족적 등을 수거했으며 CCTV로 범인의 차종과 번호를 전국에 공개수배했다. 해당 차량은 2007년 10월 경기도 이천에서 도난된 것으로 밝혀졌고, 사건 발생 다음날 전소된 채로 발견된다. 범인의 행동에는 주저가 없었고 빠르고 냉혹했으며 대담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했다. 단독범행일지 차 안에 다른 범인이 또 있었을지. 남파 간첩, 대선 후보에 대한 테러, 군에 대한 원한으로 인한 보복, 은행강도 목적 등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있었고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수사본부는 ‘강화도의 현장 지리와 초병 근무교대 시간과 이동경로 등을 잘 아는 강화도 부대 전역자', 혹은 '강화도 주민들 중에 특수부대 출신' 등을 우선 용의선상에 올렸는데, 뒤에 나오겠지만 이건 틀린 예측이었다(...). 어쨌든 경찰은 신고포상금 2천만원을 내걸면서 범인의 몽타주를 배포하였다. 강화도 및 김포의 해병대와 경찰의 검문검색이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도로가 극심한 교통혼잡을 빚어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초지대교로 향하는 김포 일대 같은 경우, 강화에서 나오는 쪽은 차량이 못 빠져나오고 들어가는 차량도 거의 움직이질 못했다고 하니...
문제는 군경의 검문이 번번이 뚫렸다는 것으로, 군/경의 초동 대처가 영 부실했다. 차량이 지명수배된 직후에 곧바로 서서울 인터체인지를 지나는 용의차량을 봤다는 신고가 들어왔지만 대응이 늦어서 범인이 지나간 딱 4분 뒤에 검문을 시작하는 바람에 몇 분 차이로 놓쳤다. 이 와중에 실탄 사격까지 발생했는데, 사건 다음날 1차 검문 뒤 용의점을 발견하지 못해 통과시키려던 차량의 끝번호가 용의차량과 같은 것을 본 19살 일병이 재검문을 요구했으나 운전자가 불응하고 도망치는 것으로 보이자(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실은 재검문을 요구하는 줄 몰랐다고 한다) 차량에 K2 소총 25발을 발사한 것이다. 하마터면 끔찍한 사달이 날 뻔했으나 다행히 타이어와 트렁크만 파손되고 운전자는 다치지 않았다.
이런 부실한 대처는 여러모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초병이 살해당하고 군용 무기가 탈취된 사건이었다. 그나마 단독범행이었으며 추가범죄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 사건이 조직적인 범행으로 이루어졌다거나 혹은 범인이 탈취한 총기로 테러 등의 악행을 저질렀을 경우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게다가 범인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을 활보했는데, 차량을 이용한 범죄라면 전국 어디든 위험할 수 있었는데도 범인의 흔적이 추적되는 곳만 긴장하고 나머지 장소는 안일했다. 심지어 범인을 잡은 것도 후술하겠지만 사실상 반쯤은 자수해서이지, 군/경이 추적에 성공하여 체포한 것은 아니다. 사건 발생 4일째 날에는, 제보를 통해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내고 신병을 확보해 조사했지만 알리바이가 있고 범인이 입은 상처가 없는 등 오해인 것으로 확인돼 풀려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사건 파장
하필 사건 발생일은 17대 대선 단 13일 전이었던지라 더욱 비상이 걸렸다. 그야말로 선거 직전이었고, 공교롭게도 사건 발생 바로 전날 이명박 후보가 검찰로부터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받은 참이었다. 그날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가 있었고, 사건 발생 3시간 뒤인 9시에 KBS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범인이 서울로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대통령 후보들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졌다. 사건 다음날 한나라당 당사에 내가 총기탈취범이라며 '이명박을 죽이겠다'는 살해협박전화가 갔다고 하머. 당연히 이명박 후보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날 토론회가 끝난 뒤 다른 후보들은 정문 지상주차장을 통해 차를 타고 돌아간 반면 혼자만은 삼엄한 경계 속에 지하통로를 이용했으며, 모든 야외 일정을 취소하고 실내행사 때는 폭발물 탐지견까지 동원해 전면적으로 수색을 했다. 본인도 방탄조끼를 입었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지지율 1위 이 후보가 총기탈취사건을 핑계로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지은 죄가 많아 테러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안타깝다", "국민을 내팽개치고 나 혼자 살겠다고 줄행랑을 친 사람은 국가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으며, 또한 이명박 대통령 퇴임 후 구속된 뒤 펴낸 저서 <표창원의 정면돌파>에서 표창원은 '추후 대통령이 된 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기보다 자신과 주변인의 이익 및 퇴임 후 안전을 위해 국정원 및 검찰 등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한 인격적 측면이 이미 그 당시에 노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경호팀의 인력과 장비는 확충되었다. 주변 경계 강화, 경찰특공대 2개에서 5개로 늘리기, 자택에도 전술팀 1개 배치 등. 또 원래 유세장 인근 건물에 비상시를 대비해 특수저격조가 배치되는데 이 일로 인해 2배로 늘었고, 헬기도 근처에 대기시켰다. 이 사건 때문에,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대선후보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보험 들었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고 한다. 혹시 테러라도 일어나면 자기들도 휘말릴 것이라고 생각했던듯하다. 위의 이명박 후보의 방탄조끼 착용과 관련해 기자들이 질문하자 캠프 관계자들이 후보의 이미지이 타격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답변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기자가 난입해 대뜸 이명박 후보 몸을 더듬었다고 한다.기사 후보와 기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범인 검거
일이 너무 커진 게 두려웠는지, 범인은 사건 발생 5일째 되던 11일, 경찰에 자수 편지를 보내 총기를 묻은 곳을 밝혔다. 아직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기에 진짜 범인의 편지가 맞음을 확신한 경찰은 탈취된 무기들을 호남고속도로 하행선인 전남 장성군 백양사휴게소 200m 부근 박산교 아래 개천천에서 모두 회수했고, 지문조회를 통해(범인은 편지 종이에 지문이 남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범인의 신원을 확인했고, 결국 사건 발생 6일째 되던 12월 12일, 경찰이 그를 검거했다. 범인 조영국(당시 35세)은 경찰의 초기 추정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경찰은 범인이 강화도의 지리와 초병 근무교대 시간 등을 파악하고 있는 강화도 주민 혹은 강화도에서 군복무를 했던 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으나, 오히려 범인은 강화도에서 근무한 적은커녕 아무 연고도 없었으며,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기 위해 오프로드 차량 동호회에 가입해 다니던 곳이 강화도라 지리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고 한다. 일부에선 과감한 행동을 볼 때 특수부대 출신일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실제로는 일반 육군 포병 출신이었다. 그리고 전과자도 아니었다. 이렇게 당초의 용의선상과 전혀 거리가 먼 자였기 때문에, 만약 자수 편지를 보내지 않았거나, 편지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사실상 화성 해안초소 K-2 소총 사취 사건처럼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컸다.
이런 짓을 한 이유는 어이없게도 변심한 애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세상이 놀랄 만한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몰락한 모습을 옛 애인이 보고 괴로워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월세가 8개월이나 밀릴 정도로 경제난에 빠진데다, 애인한테까지 차이자, 절망에 빠지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품으며 자포자기 상태로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범죄였다.
대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그저 우연한 시기의 일치였을 뿐이며,다가가는 자신을 향해 총기를 겨눠 본능적으로 찔렀을뿐 원래는 피해 해병을 죽일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처음엔 빼앗은 무기로 뭘 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지만, 경찰의 계속된 추궁에 탈취한 총기와 무기를 나중에 강도질을 할때 쓰려 했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범행 3개월 전부터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사건 당일인 6일에 비가 내리자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코란도 차를 운전하며 강화도 일대를 배회하다가 순찰하는 군인들을 본 순간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요약하자면, 애인은 변심하여 떠나버리고 사업에 실패해 경제적으로도 무척 곤란한 상태가 되자 우울증에 걸렸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자포자기성 화풀이/사회에 대한 분풀이 겸, 돈을 마련하기 위한 강도에 쓸 무기도 얻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재판 진행
원래 민간인은 군사재판의 대상이 아니지만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경우, 군형법 상 간첩, 유해 음식물 공급, 초병에 대한 범죄(살해, 살해미수, 상해죄, 협박, 폭행), 군용물에 관한 범죄, 초소침범, 포로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민간인이더라도 군인에 준하여 군사재판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의 범인도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은 후 군사법원에 회부되었다. 우선 군사보호구역 내에서 군인을 습격해 살인 및 중상해를 입히고 총과 실탄, 수류탄을 탈취했으니 초병살해+초병상해+군용물강도살인이고, 추가로 절도와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다. 1심 판결은 사형. 그러나 2심에서 ‘총기를 탈취하려는 고의’는 있었지만 초병을 ‘살해하겠다는 고의’는 입증되지 않았기에 15년형으로 감형되었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난 2022년 12월 11일 출소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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