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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정보

벌거벗은 세계사 제2차 세계대전 배후 미국 용의자 전범 가석방 극동국제군사재판 도쿄재판 박삼헌 교수 일본 타쿠야 86회

by 다크그레이캣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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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제2차 세계대전 배후 미국 용의자 전범 가석방 극동국제군사재판 도쿄재판 박삼헌 교수 일본 타쿠야 86회


2월 14일 방송되는 86회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위선, 도쿄재판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힙니다.

도쿄재판이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민간인과 포로를 학살한 일본인 전쟁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됐던 국제 군사재판입니다.


이날 강연자로는 메이지 유신, 일본 전국 3웅, 태평양 전쟁, 이토 히로부미 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일본의 역사를 흥미롭게 전해준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박삼헌 교수가 나섭니다. 박 교수는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9년간 쉬지 않고 아시아와 태평양 일대에서 침략과 전쟁을 이어간 일본의 만행을 낱낱이 밝히는 한편, 도쿄재판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그 배후에 숨겨진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특히 박 교수는 A급 전범 용의자 118명 중 재판에 선 전범 피고인은 단 28명뿐이었으며, 이마저도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고 전해 충격을 안깁니다. 이는 도쿄재판의 배후에 있었던 ‘누군가’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쇼와 천왕은 물론 생체실험을 주도한 731 부대 역시 전범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에 MC와 게스트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거 사실이에요?”, “진짜 어떻게 이래”라며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스페셜 MC로 개그맨 황제성이 함께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밝힌 황제성은 강연 내내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며 열의에 가득 찬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온 타쿠야와 미국에서 온 크리스가 여행 메이트로 함께 해 도쿄재판 당시 일본과 미국의 반응을 전하며 한층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특히 타쿠야는 “일본에서 ‘전범’은 일상생활에서 무겁지 않게 많이 쓰이는 단어”라고 밝혀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2월 14일 밤 10시 10분에 방송됩니다.


극동국제군사재판
도쿄재판



포츠담 선언에 따라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일본군의 주요 전쟁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국제적으로 행한 군사 재판소의 재판을 말한다. 일본 측에서 해당 재판을 승자의 재판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적잖게 보인다.


극동국제군사재판소는 연합국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육군 원수의 특별선언과 동 사령부 일반명령 제1호로 공포된 극동국제재판소 헌장에 따라 1946년 1월 19일에 도쿄에 설치되었다.

이후에 미국, 영국, 중화민국, 소련, 캐나다 자치령,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프랑스, 인도 제국, 필리핀, 네덜란드에서 11명의 재판관이 임명되어 일본 전범자 도조 히데키 외 28명을 재판하였다. 재판이 진행된 장소는 일본육군사관학교였던 건물의 2층 대강당이었다.

1946년 5월에 개정하여 1948년에 판결을 내렸는데, 7명이 사형(교수형), 16명이 종신형, 2명이 유기금고형을 선고받았으며, 2명은 판결 전 사망, 1명(오카와 슈메이)은 매독에 의한 정신이상으로 소추면제되었다. 쇼와 덴노도 기소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럴 경우 일본 민심이 돌아설까 우려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박탈하고 인간선언을 이끌어낸 대신 칭호는 남겨두었다. 또다른 이유로는 천황의 유죄를 입증할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28명의 재판 결과로 알 수 있듯 사형 보다 종신형이 많다. 전쟁 범죄로 천황을 기소하여 만약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사형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오히려 이를 근거로 재판의 애매모호함이 드러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달리 관련자들의 처벌과 색출이 철저하지 않은 편이었다. 몇몇 악인들이 법의 심판을 피해가고, 반대로 다소 억울한 인물이 사형 당하는 등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었다. 인도 출신의 라다비노드 팔 판사가 전원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 냉전 체제 격화로 졸속 처리된 측면도 적지 않다. 철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냉전 체제와 죽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위협은 일본의 지정학적 가치를 동아시아 반공 보루로 격상시켰다. 이 시기 들어 SCAP의 노선 또한 급변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일본에게 더 이상 짐을 지우지 않고 보통국가로 되돌리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실한 전후 처리가 '일본은 독일과 다르다!'라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사관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특히 중화민국의 경우 일본에 대한 복수보다 중공을 토벌하는 게 먼저였고, 현재처럼 당시에도 미국과 굉장히 친밀한 국가였기에 딱히 도쿄 재판에 신경쓰지 않고 그냥 미국이 주장하는것에 따라가 주었다고 한다. 731 부대 일원들은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이 재판에 회부되어야 했으나 인체실험 데이터를 넘겨주는 사법거래로 빠져나간 사례도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 재판에 무타구치 렌야가 피고석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적을 하나하나 깔 때 마다 검사 측과 판사 측은 엄청나게 비웃었고, 그와 반대로 피고석에 있던 전범들의 얼굴은 굳어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바로 불기소처분, 싱가포르 군사법원으로 송치되어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기 까지 2년을 살게 된다


이러한 재판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법적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 중 하나가 명백히 당사국인 승전국이 다른 당사국인 패전국을 심판한다는 것. 다만, 소급입법 측면에서의 비판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타당하지 않다. 이 사건에서도 그렇지만 각국의 중요한 정치적 죄과에 따른 심판[8] 등과 관해서는 그러한 사건이 터진 시점에서는 처벌이 불가능하고 그 처벌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보이므로 예외적으로 소급입법을 인정하는 게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 재판을 다룬 매체로는 2006년 중국에서 당시 중국 측 재판관을 맡은 매여오(梅汝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동경심판(東京審判)>, 캐나다의 방송사[9]와 네덜란드의 제작사[10]가 공동 제작하고 2016-17년에 걸쳐 NHK가 지원/방송 한 미니 시리즈(4부작) <Tokyo Trial>이 있다. NHK가 돈을 댔으나 일본인 중에는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소수 의견을 피력했던 네덜란드의 베르트 뢸링이 주인공 격 인물로 묘사된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로 볼 수 있다.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징용, 징병된 조선인들이 전범으로 기소되어 처형당한 일도 있었다. 전범이 된 포로 감시원들.



B, C 전범들도 바다에 유골 뿌리라는
지시하기도 했다.

전쟁범죄의 분류
(A형, B형, C형)




'A급 전범'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 표현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조례를 통해 전쟁범죄를 분류한 방법에서 유래한다. 이 조례의 5항 a조, b조, c조에 해당하는 전쟁범죄가 바로 A형, B형, C형 전쟁범죄인 것이다. 여기서 "형"은 원래 원문에서는 클래스(class)인데, 죄질의 등급이 아니라 재판의 편의를 위한 단순한 분류 코드에 가깝다. 이를 한국어에서는 보통 등급을 나타내는 '-급'이라고 번역한 표현 때문에 마치 최악질 A급, 순악질 B급, 그냥 악질 C급으로 등급이 매겨진 것으로 여기기 쉬운데 위에 보이듯 그런 것이 아니다.


흔히 잘못알려진 것처럼 전쟁범죄자(사람)의 분류가 아니라, 전쟁범죄(행위)의 분류이다. 실제로 몇몇 전쟁범죄자(사람)는 A·B·C형을 아우르는 여러 개의 전쟁범죄(행위)로 기소되었다. 각 조에 규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히려 A형 전쟁범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전쟁범죄자는 한 명도 없다. 소위 'A형 전범'들은 B·C형 전쟁범죄로도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 B·C형 전쟁범죄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았다. 따라서 소위 'A형 전범'들 중에는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더 많고, 반대로 B·C형 전쟁범죄만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도 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검사측과 변호사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문제는 바로 A형 전쟁범죄에 관한 것이었다. 변호사측의 주장은 국제법이라는 게 강제성이 없는 이상, 어느 나라든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이 안될 시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으므로, 전쟁을 결의한 국가지도자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며, 국가차원의 전쟁배상 말고는 패전국에 대한 보복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제2차 세계대전은 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패전국에 대한 보복의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말. 따라서 재판부가 B·C형 전쟁범죄로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타협의 결과이다. 실질적으로는 검사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형을 선고했지만, 명목상 B·C형 전쟁범죄만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하며 변호사측의 주장도 함께 수렴한 것.


판결



재판 당시에는 현역 군인이라도 미국 측에서 일본군 군인 전범들을 군인으로 인정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재판시 일부 군인들의 군복의 서훈. 계급장 등 치장은 전부 탈거 된 상태로 재판에 임했으며, 일부 군인은 군복에 계급장.서훈은 뜯겨지기 싫다는 이유로 일부는 군복이 아닌 정장 차림으로 재판에 서기도 했다.



사형
교수형


사형 집행 방식은 전원 교수형이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는 다르게 미국 측에서 현역 군인이라 할 지라도 총살형에 강력하게 반대해서 그렇다. 이유는 독소전쟁의 소련이 엄청난 희생을 치룬 것 처럼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아주 지옥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현직 군인들 3명에 대한 총살형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해서 전원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또한 교수형 집행시에도 군복이 아닌 죄수복을 입은 채로 교수형이 집행된다.


종신형
금고형


불기소
가와베 마사카즈(河辺 正三)
무타구치 렌야(牟田口 廉也)
아오키 가즈오(青木 一男)
아베 겐키(安倍 源基)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
아모 에이지(天羽 英二)
안도 기사부로(安藤 紀三郎)
이사하라 히로이치로(石原 廣一郎)
이와무라 미치요(岩村 通世)
기시 노부스케(岸 信介)
구즈 요시히사(葛生 能世)
고다마 요시오(児玉 誉士夫)
고토 후미오(後藤 文夫)
사사카와 료이치(笹川 良一)
쇼리키 마쓰타로(正力 松太郎)
스마 야키치로(須磨 弥吉郎)
다카하시 산키치(高橋 三吉)
다다 하야오(多田 駿)
다니 마사유키(谷 正之)
데라시마 겐(寺島 健)
도쿠토미 소호(徳富 蘇峰)
니시오 도시조(西尾 寿造)
혼다 구마타로(本多 熊太郎)
마사키 진자부로(眞崎 甚三郎)
사토미 하지메(里見 甫)



6.5. 재판 전 자살
고이즈미 지카히코(小泉 親彦)
고노에 후미마로(近衞 文麿)
하시다 구니히코(橋田 邦彦)
혼조 시게루(本庄 繁)



증인
와카쓰키 레이지로(若槻 禮次郎)



기타
아카기 고헤이(赤木 桁平) - 병으로 석방
오타니 게이지로(大谷 敬二郎) - 도주 이후 1949년에 체포,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56년 가석방된다.
오카와 슈메이 大川 周明) - 기소면제
나가노 오사미(永野 修身) - 해군원수, 군령부총장, 판결 전에 병사
마쓰오카 요스케(松岡 洋右) - 제 63대 외무대신, 판결 전에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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