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정보

1969년 KAL기 납북사건 그 날의 이야기와 고통의 시간 꼬꼬무

by 해피냥냥이 2025. 1. 24.
반응형

1969년 KAL기 납북사건 그 날의 이야기와 고통의 시간 꼬꼬무

 

 

 

1969년 발생한 KAL기 납북사건과 그 범인 조창희의 이야기, 그리고 납북된 승객들의 고통과 그들의 가족들의 오랜 기다림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50년을 넘긴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가족들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깊이 있게 다룬 내용을 담았다.

 

1969년 12월, 그 해의 겨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할 수 없는 상처와 슬픔을 안겨주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대한항공 YS-11기에서 발생한 납북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비행기 하이재킹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51명의 민간인이 탄 여객기가 북한의 함경도로 납치되었고, 그들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고통의 시간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 사건의 범인은 바로 조창희였다. 그는 당시 '한창기'라는 가명으로 비행기에 탑승해 범행을 저질렀다. 강릉에서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비행기, 이순남 씨는 남편 장기영을 기다리며 그 날을 맞았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행기 승객들은 북한으로 납치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은 그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이후 북한은 자발적인 납북을 주장하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지만, 그 누구도 이 사건이 단순한 범죄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의 긴박한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가던 순간, 승객 중 한 명이 조종실에 들어가 급히 기수를 틀었고, 그 후 비행기 전체가 납북되어 북한 땅으로 향했다. 승무원들은 비행기의 납북 사실을 알리며 승객들에게 신분증을 찢으라고 명령했다. 북한군은 비행기 도착과 함께 총을 겨누며 승객들을 압박했다.

 



그런데 그 사건의 가장 큰 충격은 범인 조창희였다. 조창희는 속초 범죄 수사대 대장을 맡기도 했던 인물로, 권총을 소지한 채 비행기에 탑승해 납북을 실행한 것이다. 그 당시 그가 납치한 승객들은 평양에서 철저한 고문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북한에서 강제로 김일성 우상화 교육을 받았고, 그 중 일부는 이 교육과 고문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승객들의 증언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납북된 승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겪은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문을 견디지 못한 일부 승객들은 정신 이상을 겪기도 했고, 그들의 가족들은 66일 동안 기다림과 절망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기다림 끝에 39명의 승객이 송환되었지만, 그 중 11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 중 한 명이었던 황원 MBC PD는 북한 체제에 항의하며 송환을 요구했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고문을 받았다.

 



이 사건은 그저 비행기 납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납북된 승객들의 가족들은 50년이 넘도록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서 삶을 이어갔다. 2001년, 남북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통해 일부 승객들의 생사가 확인되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특히 황원 PD의 아들 황인철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인철은 아버지의 생사를 추적하며, 탈북 전문가로부터 기적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되었다"는 소식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고, 2013년, 그가 44년 만에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탈출은 실패로 돌아갔고, 황인철은 다시 한 번 큰 좌절을 맛보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황인철은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고통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말처럼, "제가 아버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계속 그리워했다고, 아버지 아들로서 닮기를 원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리고 장기영의 아들 장재석은 아버지의 부재로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장기영의 아내 이순남은, 만약 남편을 다시 만난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건강하게 지내셨습니까?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전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움과 고통은 그들을 계속해서 괴롭혔고, 그들은 끝내 그리움을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방송에 참여한 MC들과 리스너들도 감정을 숨길 수 없었고, 그들의 목소리 속에는 진심 어린 호소가 담겨 있었다. 장도연, 장현성, 장성규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이 싸움이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박주현은 "개인이 뭉쳐서 나라가 된다"며 대중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이 사건은 단지 과거의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이고, 그들의 고통은 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해야 할 것이다.

 

 

 

#KAL기납북사건

#조창희

#황인철

#북한납북

#비행기하이재킹

#김포공항사건

#납북승객

#가족의기다림

#1969년납북사건

#김일성우상화교육

#남북이산가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