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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3 한국전쟁 피난민 ​피난 사건 흥남 철수작전 전말 메러디스 빅토리호 해상철수작전 최대 규모 구출작전 기네스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by 다크그레이캣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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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3 한국전쟁 피난민 피난 사건 흥남 철수작전 전말 메러디스 빅토리호 해상철수작전 최대 규모 구출작전 기네스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3 재방송 81회



꼬꼬무 시즌3
한국전쟁 피난민 피난 사건 흥남 철수작전 전말
메러디스 빅토리호 해상철수작전
최대 규모 구출작전 기네스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3 재방송 81회





지상 최대 규모의 구출작전과 기네스북에 오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가 6월 1일 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시즌3 81회에서 조명됩니다.




1950년, 추운 겨울 어느 날. 흥남에 사는 6살 인재네 가족은 겨울을 대비해 막 김장을 마쳤습니다. 인재네 식구들은 이불과 먹거리를 보따리에 대충 쓸어 담고 급하게 집을 나섭니다. 영문도 모른 채 길을 떠나게 된 인재는 곧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쫓기듯 이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끝없이 이어진 행렬의 정체는 피란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지는 흥남 부두.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란 찬 12월, 흥남 부두로 향하는 길은 참혹한 그 자체였습니다. 추위와 배고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족과의 생이별이었습니다.



부모 손을 놓친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여기저기 가족을 찾는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철수를 결정한 군인 10만여 명에 피란민 20만여 명까지 더해져 흥남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룹기다. 앞은 시퍼런 바다가, 뒤는 코앞까지 추격해온 중공군이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피란민들의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요? 한편 급한 연락을 받고 흥남항에 입항하는 배가 한 척이 있었습니다.



폭 19미터, 길이 138미터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였습니다. 이 배의 정원은 단 60명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마지막 기회가 될 승선이 시작되는데 최대한 많은 인원을 태우기 위해 선장과 선원들이 생각해 낸 묘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벌리 스미스씨에게 생생한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식량과 물, 심지어 화장실도 없는 극악의 상황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항해가 시작됩니다. 그러던 중,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배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인데요. 



그것도 무려 다섯 명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찾아온 이 아이들에게 미국인 선원들은 김치 1,2,3,4,5호라는 이름을 선사했습니다. 과연,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키즈들은 그 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리고, 흥남에서 거제도까지 온 수많은 피란민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흥남철수작전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놀라운 뒷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에서 사위 역으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배우 김도현이 장현성의 친구로 찾아왔습니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듯 초집중 모드로 경청하던 김도현은 탄성, 감탄, 눈물 3종 세트를 선보이며 최강꼬물이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장도연의 친구는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라이머입니다. 초반 장도연의 질문에 엉뚱하고 기발한 답변을 내놓으며 웃음을 유발하던 것도 잠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놀라운 상황판단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99.9% 정답률을 기록하며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장성규의 친구는 최근 드라마 '구미호뎐 1938'를 통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김용지가 함께했습니다. 엉뚱 발랄한 매력과 톡톡 튀는 반응과 답변으로 녹화장 분위기 이끌던 그녀는 그날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김용지의 눈물을 자아낸 기적의 순간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든한 번째 이야기, 지상 최대 규모의 구출작전 '푸른눈의 선장과 김치 – 기적의 해상철수작전' 편은 6월 1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됩니다.




흥남 철수작전 興南撤收
Hungnam evacuation






'흥남 철수작전'은 6.25 전쟁 중인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6일까지 흥남에서 미군 10군단과 대한민국 국군 1군단 그리고 피난민 10만여 명이 철수한 작전이다. 그 날 아침의 배는 6시 15분에 닿았다. 눈바람을 무릅쓰고 얼음판 위에서 밤을 새운 군중들은 배가 부두에 와닿는 것을 보자 갑자기 이성을 잃은 것처럼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곤두박질을 하듯이 부두 위로 쏟아져 나갔다. (중략) 부두 위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됐다. 공포가 발사되고 호각이 깨어지고 동아줄이 쳐지고 해서 일단 혼란이 멎었으나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또 그 속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쌀자루를 떨어뜨린 남편, 옷보퉁이가 바뀐 딸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서로 부르고, 찾고, 꾸짖는 소리로 부두가 떠내려 가려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김동리의 소설 <흥남 철수> 중에서 인용)




1950년 11월 말, 북진통일을 눈앞에 뒀다고 생각한 유엔군은 서부전선을 담당하던 미8군이 중공군한테 괴멸적인 대패를 당하자 11월 30일 동부전선에서 호기롭게 북진 중이던 미10군단에게 함흥-흥남 지역으로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그와중에 미10군단 산하 미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 9병단의 포위에 걸려 미10군단 전체가 중공군에게 포위섬멸당한다는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고 최종적으로 유엔군은 12월 8일 흥남 철수 명령을 내렸다.




12월 15일 미 제1해병사단을 시작으로 미10군단 전 병력이 흥남으로 집결, 해상을 통해 부산으로 철수를 시작했다. 이것이 1.4 후퇴의 전초전이었다. 육로로 철수하지 못하고 흥남을 통해 해로로 철수해야 했던 이유는 철수 당시 함흥-흥남 일대를 제외한 함경도 전역이 중공군 수중에 넘어간 상태였으며 12월 9일에 중공군이 원산까지 점령하면서 퇴로가 끊겼기 때문이다. 즉, 배로 철수하는 것 빼고는 함경도 등지에 위치한 병력과 피난민이 남쪽으로 내려갈 방법은 없었다. 따라서 유엔군 사령부는 해상 철수가 이루어지는 흥남항 부두를 중심으로 A구역부터 F구역까지 방어선을 설정하고, 동해에 위치한 미 해군의 함포 사격의 도움을 받으며 유엔군과 한국군은 철수를 준비한다.





피난민을 태운 주요 선박

메러디스 빅토리호: 14,500명
버지니아 빅토리호: 14,000명
레인 빅토리호: 7,000명
마다케츠호: 6,400명
토바츠 마루호: 6,000명
요나야마 마루호: 3,000명
BM 501: 4,300명
LST 074: 3,500명
LST 081: 4,000명
LST 661: 9,400명
LST 666: 7,500명
LST 668: 10,500명
총 98,1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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