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시즌3 최인철 30세 장동익 33세 증거 진술 누명 낙동강변 부녀자 성폭행 살해 미제사건 범인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진범 박준영 변호사 재방송 80회
꼬꼬무 시즌3
최인철 30세 장동익 33세 증거 진술 누명
낙동강변 부녀자 성폭행 살해 미제사건 범인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진범 박준영 변호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3 재방송 80회
5월 25일 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3 80회에서는 '낙동강변 살인사건-분홍보따리의 기적' 편을 방송됩니다. 1990년 1월 4일, 연초부터 부산이 발칵 뒤집힐만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낙동강변에서 데이트 하던 남녀를 상대로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자는 잔혹하게 살해당한 채 갈대숲에서 발견이 됐고, 동승자인 남자는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끝내 범인은 잡히지 못하고 미제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2년 뒤, 이 사건의 진범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범인들은 바로 장동익 씨(33세)와 최인철 씨(30세)였습니다. 범행 일체를 전부 자백했다는 두 사람.
사건 현장에선 그들이 범인임을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와 목격자 진술도 나오게 되는데요. 하지만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평소 범죄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가장이었던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두 사람은 그동안의 진술을 뒤집습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재판 내내 억울함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법판결까지 간 두 사람은 결국 무기징역을 받게 됩니다.
억울합니다.
강도짓도, 강간도, 살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2016년, 서울. 사회부 새내기 문상현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한 지인의 제보 전화였습니다. 며칠 뒤, 문 기자는 부산에서 올라온 50대 남성 두 명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살인 누명을 썼다는데. 좀 도와줄 수 있나”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두 사람은 바로 동익 씨와 인철 씨였습니다. 그런데 문 기자는 의아했습니다. 그냥 살인도 아닌 강간 살인을 저질러 놓고 억울하다니, 심지어 감형까지 받아 놓고 이제 와서 왜 누명을 썼다는 걸까요. 고개를 한참 갸웃거리며 반신반의하던 그때였습니다. 두 사람이 문 기자에게 분홍보따리를 슬며시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분홍보따리를 살펴본 문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보따리 안에는 두 남자의 무죄를 입증해 줄 증거들이 수북하게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문 기자는 두 사람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수원노숙소녀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내 이름을 알린 재심 계의 스타 변호사, 박준영이었습니다. 얼마 뒤, 분홍 보따리 속 자료들을 검토한 박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 사건이 온통 ‘조작’과 ‘은폐’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 범인 아니에요. 한번 만나시죠.”
두 사람은 대체 어쩌다 잔혹한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된 걸까요. 이번 주 방송에서는 두 남자의 잃어버린 30년 세월의 진실을 추적해 봅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는 오랜 단골손님 이현이가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녹화장을 찾은 그녀는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는지만 그것도 잠시, 두 남자의 말도 안 되는 사연에 울고, 분노하며 최고의 몰입도를 보여줬습니다.
아이즈원으로 이름을 알린 가수 이채연이 'KNOCK'컴백과 함께 노크하여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함께했습니다. 상큼한 외모와 쾌활함으로 촬영장의 분위기를 밝힌 가수 이채연. 그녀는 자신이 바로 원조 꼬물이라며, 세트장을 무척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다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며 날카롭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TV를 보고 있노라면 어디든 등장하는 명품 감초 배우 김정태가 벌써 두 번째로 장현성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김정태는 이 사건을 듣자, 본인의 고향이 부산이라며 익숙한 장소들에 눈을 반짝이다가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날의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지 여든 번 째 이야기 '낙동강변 살인사건–분홍보따리의 기적' 5월25일 목요일 밤 10시 30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3 80회에서 방송됩니다.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1990년 1월 4일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의 갈대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낙동강변 도로에서 발생했다고 하여 낙동강변 살인사건이라 불리기도 한다. 당시 도로에서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의 습격을 받아 남성은 상해를 입고 여성은 성폭행 당한 후 살해당했다. 당시에 사건 발생 뒤 약 1년 10개월만에 범인을 체포하여 대법원까지 유죄선고를 하여 해결된 사건이라고 여겨졌으나, 2016년 7월 1일 일요신문 문상현 기자를 통해 과거 수사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누명을 씌우고 조작한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되었고, 같은 해 10월 1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더욱 구체적인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화제가 됐다. 이후 2019년,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실이 밝혀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으나 재판 결과를 보다시피 패소하고 피고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21년 2월, 유죄를 받았던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받았고 현재까지 이 살인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1990년 1월 4일 새벽 1시 30분께 부산 사하구 신평동 인근에서 한 남녀가 차를 주차해 놓은 후 여성은 차에서 내리고 남성은 뒷좌석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괴한 2명이 강제로 차 문을 열고 피해 남성의 얼굴을 돌로 계속 가격하였다. 그때 여성이 돌아오고 괴한은 "남성을 살리려면 차에 타라"라고 말했다. 차는 엄궁동으로 향했고, 괴한들은 피해 남성의 손을 뒤로 묶고 입을 막은 후 피해 남성을 죽이기 위해 낙동강에 밀어 넣었다.
피해 남성은 겨우 테이프를 풀고 물속에서 나와 괴한과 격투를 벌이다가 괴한이 방심한 사이 여성에게 도망치라는 소리를 지른 후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도망쳐 근처 공장에 숨어있다가 공장 직원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 후 강변도로 앞 낙동강변 엄궁동 555번지 갈대숲에서 피해 여성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두개골이 분쇄골절 되었으며 뇌 일부를 도구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손상된 상태였다. 피해 여성은 인근 지역에 살던 박 씨로, 박 씨는 사건 바로 전 날까지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다.
현장에서는 박 씨의 시신 외에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그 어떤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박 씨의 직장동료는 밤이 어두워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남성이 기억하는 유일한 사실은 범인 중 한 명은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았다는 정도였다. 범인의 특징은 그 시기 낙동강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여러 건의 강도상해 사건들의 범인들과 매우 흡사했다. 사람들은 일련의 사건을 가리켜 일명 '엄궁동 2인조 사건'이라 불렀다.
엄궁동 2인조는 현장마다 지문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수사는 지체됐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부분에서 체액이 묻은 손수건이 발견 되었는데, 초기 검사 혈액형은 A형 이었으나 재검사 후 AB형로 밝혀졌고[2], 2인조 혈액형은 각각 AB형, O형이었다. 피해자 남성 차량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으로 확인한 결과, 피해자들의 혈액형은 남성 A형, 여성 B형이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2년 후 용의자들이 검거됐다. 당시 경찰 발표에 따르면, 체포된 두 사람은 낙동강 주변에서 경찰을 사칭하며 돈을 갈취하고 다녔던 전력이 있었다. 당시 을숙도는 차량 통제 지역이었으나, 연인들이 은밀한 데이트를 위해 차를 몰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고, 이들을 대상으로 경찰인 척 위협하다가, 봐줄 테니 돈을 달라 하여 돈을 받고 내보내는 형식이었다. 게다가 한 명은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았다. 당사자 최 씨 말로는 당시 청년봉사단원이었고 자연보호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을숙도에서 차를 끌고 온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했더니 30,000원을 자신에게 주었고, 얼떨결에 그 돈을 받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고 한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이들이 범인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10여 차례가 넘는 조사 과정에서 이들은 진술을 끊임없이 번복했다. 그리고 특정 시점부터 두 사람의 진술이 정리된 정황이 발견됐다. 최종 수사 결과 검거된 두 사람 중 체격이 큰 최 씨가 각목으로 피해자를 구타한 후 키가 작은 장 씨가 돌을 이용해 살해한 것으로 정리됐다.
두 사람은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21년 후 두 사람은 감형을 받고 출소했다. 하지만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당시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변호사는 장 씨가 강력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 씨의 시력이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나빴다는 사실은 최 씨도 알고 있었다. 시력판의 가장 윗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력이었다. 그럼에도 최 씨는 당시 장 씨를 공범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 씨가 형사들로부터 혐의를 인정하면 가혹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속임수, 일명 '공사'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현재는 과학수사가 발달하여 DNA 검사나 CCTV 확인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과학수사라는 개념이 생소했다.
그래서 용의선상에 올라와있는 용의자로부터 자백을 받는 것이 강력한 증거였는데, 자백을 받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강압수사가 종종 일어났다. 박준영 변호사가 그 당시 사관 관련 신문기사 3년치를 찾아보니 고문과 가혹행위와 관련된 기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 기사들 중 엄궁동 피해자들이 수사를 받았던 부산사하경찰서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비슷한 고문을 당했다는 기사도 발견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 미제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경찰에게 특진을 시켜주는 제도가 있었고, 특진에 눈이 먼 경찰이 증거를 조작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든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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