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시즌3 산악인 故 고미영 프로필 학력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원정 등반 파트너 매니저 김재수 대장 고향 나이 67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3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발 디뎌볼 일조차 없을 8,000m의 세계에 꿈을 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2월 23일 밤 방송을 통해 공개됩니다.
2007년 봄, 에베레스트 원정을 준비하던 김재수 대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대장님, 이번 원정대에 한 명 더 합류시킬 수 있습니까?”
그 주인공은 국내 스포츠클라이밍 분야 최고의 선수 고미영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 선수의 합류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가 고산등반에 도전한다는 것은,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김재수 대장이 그녀의 합류를 반대하자, 이번엔 고미영이 직접 전화를 걸어옵니다.
저 할 수 있어요! 에베레스트 원정
꼭 같이 하고 싶습니다
8,000m 14좌 완등이 제 꿈이에요
2007년 당시 14좌를 완등한 여성은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고미영은 아무도 이루지 못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김대장에게 부탁합니다.
“대장님. 제 매니저가 되어주세요!”
혼자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가 경험 부족으로 실패를 맛본 고미영은 고산 등반 경험이 많은 김 대장에게 자신의 등반 매니저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그렇게 14좌 완등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된 두 사람. 목숨을 건 여정을 시작합니다. 산소가 희박해서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어려운 8000m. 거센 눈보라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눈사태 등 숱한 위기를 넘기고 14좌 완등을 향해 도전하는 고미영과 김재수 대장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놀라운 속도로 등반을 이어가던 중, 히말라야 낭가파르트 산에서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고미영과 김대장은 단 둘이 서로의 몸을 이어주는 안전장치만 매달고 산에 타는데 과연 위험천만한 위기에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14좌 완등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직접 찍은 생생한 현장 영상들로 이뤄진 감동적인 대여정이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수영선수 출신으로 건강미를 자랑하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유이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자리했습니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유이는 여성 산악인 고미영의 도전기를 들으며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중 직접 경험한 고소 증상을 떠올리며 “소주 세 병을 원샷으로 먹은 느낌”이었다며, 고산 등반의 어려움과 공포에 대해 한마음으로 공감했습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는 이동욱의 강력한 추천으로 변함없는 꽃미모로 여심을 홀리는 배우 김범이 등장했습니다. 첫 방문에 온몸으로 어색함을 표출했지만, 어색함도 잠시 금세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미영 선수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하며 ‘두 사람 사이의 약속, 그 책임감의 무게가 너무 크고 대단해서 감히 이야기하기 어렵다’며 감동의 소회를 전했습니다.
한편,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는 단골손님 카라의 한승연이 등장했습니다. 특히 한승연은 이번 출연으로 정규 편성 이후 최다 출연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날 오프닝부터 한승연은 방송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내며 단골손님다운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한승연은 두 사람의 약속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이어가지 못할 만큼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SBS '예순일곱 번째 '목숨을 건 약속 - 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 편은 2월 23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공개됩니다.
고미영 등반 파트너
산악인 김재수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 출생 : 1961년 부산시
▶ 소속 : 백산실업(대표이사), 경상남도 산악연맹(부회장)
▶ 학력 : 성지공업고등학교
▶ 수상 : 2016년 체육훈장 청룡장
2012년 제13회 대한민국산악상 대한민국 산악대상
▶ 경력 : 2011.04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
고미영 프로필
나이 고향
Ko Mi-Young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 : 1967년 7월 3일 전북 부안군
▶ 사망 : 2009년 7월 11일 (향년 42세)
▶직업 : 산악인
▶ 등반경력 : 히말라야 8,000m 11좌 등정
세계 7대륙 최고봉 3좌 등정
추락 당시 추정시간이 오후 10시 30분이었다. 그녀가 1000m 이상 추락을 했음에도 1시간 30분 이상을 생존했다면 사망일이 7월 12일이 되는 거지만 7월 12일 아침에 헬기 발견 당시 사망한 것으로 보여 언제 사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시신수습은 날씨 악화로 인해 7월 16일에 진행되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산맥 낭가파르바트
알피니스트로의 삶
한국나이로 39살이 된 2005년 클라이머가 아닌 알피니스트로 전향하였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고 클라이머보다는 엄홍길, 박영석등으로 대변되는 알피니스트들이 좀 더 대중에게 친숙하고 인기를 누리는 시기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재능은 어디가지 않았는지 2005년 파키스탄의 드리피카를 오르고(6447m) 한국나이로 40살이 되던 시기인 2006년 8,000미터 14좌중 가장 쉬운 난이도인 중국의 초오유를 등반하며 14좌 등반의 첫 시작을 알렸다.
한국 산악계 최대의 사건중 하나인 여성 14좌 완등 경쟁의 서막이 열렸다. 다만 이 때 당시만 해도 나이도 많았고 여성 알피니스트로의 시작은 알렸지만 산악계에서도 본인도 뭔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도 그 당시엔 14좌 정복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당시 여성으로써 14좌를 모두 정복한 사람이 전 세계에 없었고 클라이머로 보여준 그녀의 신체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고 노력하는 자세나 끈기가 보통 수준이 아니었던 탓에 그녀가 강사로 속해있던 코오롱 등산학교의 운영 주체였던 코오롱 스포츠가 그녀의 스폰서로 나서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코오롱의 전격적인 지원이 더 강화되면서 2007년엔 단숨에 14좌중 세개인 에베레스트, 브로드피크, 시샤팡마를 등정해버린 것이다. 알피니스트로 전향한지 2년 밖에 안된 상태에서 14좌중 3좌 등정을 1년만에 이뤄낸 대단한 업적이었다. 이때부터 언론에서도 슬슬 여성 최초 14좌 완등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본인 또한 크게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당시 또 다른 유명한 한국의 여성 산악인이었던 오은선에게 붙은 스폰서였던 블랙야크에게 고미영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오은선 또한 한국 등산계에서 꽤나 이름 떨치던 선수였고 특히 2001년부터 꾸준히 14좌를 정복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에두르네 파사반만 제치면 오은선을 여성 최초의 14좌완등자로 만들 수 있었을꺼라 기대했던 블랙야크에게는 갑자기 튀어나와 엄청난 페이스로 등반하는 고미영의 존재는 겁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어느 누구든 세계 최초 여성 14좌 등반자로 소개된다면 이로 인해 보는 홍보효과가 막대할 것이고 이 홍보효과를 누리지 못하면 그야말로 아웃도어 브랜드의 경쟁력에서 밀린 탓에 출혈경쟁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부터는 단순히 오은선 대 고미영이 아니라 오은선/블랙야크 vs. 고미영/코오롱의 대결 양상이 되어갔다. 고산 등반이라는 것은 동네 뒷산 오르는 것과 달리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고 오은선과 고미영 또한 프로 산악인으로 각 회사에서 엄청난 임금을 받는 처지였고 14좌를 먼저 등반할 경우, 본인 개인과 회사들이 누리는 영예나 경제적 효과가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이때부터 점입가경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고미영의 경우는 알피니스트 전향한 지 만 3년이 되던 해인 2008년에 로체, K2(산), 마나슬루를 오름으로 2년간 14좌중 6개를 정복하는 성과를 냈다. 오은선 또한 2008년에만 마칼루, 로체 , 브로드피크, 마나슬루를 올라서 고미영보다 한 좌를 더 많이 오르는 기염을 통했다. 그 전에 오은선이 올랐던 가셔브룸이나 시샤팡마, 에베레스트의 경우 거의 9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이뤄낸 것이었다. 그런 페이스로 달려오던 산악인이 1년에 4개를 올랐으니 이는 완전한 오버페이스였고 이는 누가 봐도 14좌 등반을 노리는 것이 뻔했다. 더이상 알피니즘의 의미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등정주의식 경쟁.
2009년에도 이 무한 경쟁은 꾸준히 이어졌다. 오은선은 다울라기리, 가셔브룸1봉, 낭가파르바트, 논란의 칸첸중가 네 봉우리를 올랐고 고미영은 2009년 마칼루, 칸첸중가, 다울라기리를 오르고 마지막엔 낭가파르바트에 도전했다. 하지만 고미영이 낭가 파르바트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자 이 끝도 없는 무한 경쟁은 비극으로 끝나버렸다. 오은선이 고미영 사망 다음 해인 2010년에 마지막으로 14좌중 최종보스인 안나푸르나를 오름으로 이 경쟁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고미영의 죽음과 칸첸중가의 등반여부 논란으로 이미 의미는 퇴색될대로 된 상태였다.
안타까운 마지막
등반가로서도 발군의 활약을 펼쳤던 그녀는 2009년 7월 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산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 하던 중, 안타깝게도 C2부근에서 로프가 없는지점을 지나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실족사하였다. 향년 42세. 1,000m 이상을 떨어졌으며 중간에 튀어나와 있던 바위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한다. 실제로 발견 당시 머리 쪽 손상이 굉장히 심했고 피도 상당히 많이 흘린 상태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추서하였고, 대학산악연맹과 그녀의 고향인 부안군에서는 고인을 애도하며 부안스포츠파크에 '고미영 동상'을 세웠다.
2012년에 대한산악연맹 50주년을 기념하여 선정한 '산악계를 빛낸 50인'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고인은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체육학과에 진학중이었는데, 자신의 뒤를 이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진학이었다고 한다. 또한, 고산 14개봉을 모두 정복하고, 자신의 등정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는 것을 계획하였으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이 책은 영영 출간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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